지구 극장,
Earth Theater,
시놉시스1
미완성인 나의 세계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건 서울 한 가운데의 어두운 전시장을 맴도는 나비와 벌, 새, 햇살에 비치는 먼지, 씨앗, 같은 거였어요. 사방에 창이 하나도 없는 공간에서 떠올린 것이 자연이라니, 그 느낌을 살려야 하는 걸까? 무엇으로? 사운드로? 영상으로? 그럴 바에는 자연 속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을, 작은 정원이 있고 아침엔 새가 지저귀고 낮에는 고양이가 어슬렁대는 내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될 일이었죠. 전 얼마전부터 작은 조립식 극장과, 이 극장의 재료인 금속의 마찰음, 그리고 다르게는 인공향이 아닌 태초의 풀과 꽃, 숲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응축한 씨앗, 구근의 물질성에 매료되어 있었어요, 정확히는 물질과 비물질을 가로지르며 혼재해 있는 모든 것들이죠, 사실 내 집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오랜 시간을 들여 그렇게 만들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항상 그 곳을 떠나고 싶어해요. 그리고 떠나고 싶어한다는 그 사실은 나를 불편하게 압박하곤 했어요,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가 되거나 불평불만 가득한 노파가 된 듯했죠.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번 전시에서 나의 완벽한 세계를 떠나려 드는 그 압박감, 불안함과 결핍으로 인해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인 나의 세계”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나는 그 세계를 지구 극장, 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쉬지 않는 극장
지구라는 극장엔 무대가 있고, 배우도 있고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드라마와 서사가 이뤄지는 곳, 작은 벌레, 길가의 돌멩이, 도시의 네온사인, 모든 것이 누군가를 대신하지 않고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죠. 나는 지구의 파편화 된 모습들을 여러 개의 입체로 형상화해요. 이 중 하나에는 이 모든 것을 응축한 다알리아 구근의 형태 조각을 만들어 놓을 거고, 다른 한 쪽엔 땅과 풀의 모양새(나무조각)가 있을 거에요, 이 구근이 만약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이 새로운 주인공에게 아낌없이 박수가 쏟아지겠죠, 만약 그 구근이 그대로 말라버린다면, 우리는 이 구근의 존재와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고. 그리고 우리는 아마도 너도나도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하려 들 거에요. (웃음), 그렇게 제 심리적 경험(불안함과 결핍 등)은 모두의 것이 됩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바에요,
심폐소생술
결국 회복하기 위해서는, 심폐소생술처럼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차별과 탄압의 실체에 대항해, 멀지 않은 미래에 보게 될지 모를 폐허를, 그리고 그렇게 될 현실에 저항하면서 우리가 사고하는 걸 AI에게 맡긴 채 멈추지 않도록 이상하고 낯선 걸 끊임없이 던져놓는 일이 필요해요. 그 회복은 완벽한 것에서 오기는 힘들죠, 완벽한다고 느끼는 것들의 대다수는 인지와 감각의 오류에 가까워요, 그냥 믿어버리는 거죠, 완벽하다고, 그리고 거기에 각종 이유를 붙이고 타당성을 부여하죠, 일방적으로 다수가 지정해 놓은 완벽함에 대한 이미지. 대책없이 희망에 들뜬 낭만주의자의 세계를 결함이 없는 완벽한 세게 완벽한 세계라고 믿어버리곤 하죠,
정체
이 세계에는 제가 작업에 쓰던, 제가 만들고자 했던 완벽한 세계의 파편들이 함께 존재해요, 잘려지고 남은 금속 조각들, 무대처럼 보이는 극장, 자연의 요소, 그리고 얼기설기 엮어놓은 삼베끈,등등,어떤 것은 이미 만들어진 것이고, 어떤 것은 덜 만들어진 것이죠, 이야기와 연결이 아니라 구성요소를 던져 놓듯 작업했어요,
나의 완벽한 세계는 불타고, 검고, 어두우며, 모호하고, 흐릿한, 심장을 할퀴고, 숨을 멈추며, 갈색으로 말라 비틀어져 떨어지는 것.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작업실에서 사라져 가는 숨까지도 부여잡고 있는 것들로 온통 채워져요. 밝고 환한, 색이 담긴 빛으로 이 세계를 비추지만 나의 완벽한 세계의 실체는 파편과 폐허, 그리고 단서들, 이렇죠,
심리나 정서를 물질로 구현할 때, 가장 불편한 것은 이것은 재현이 될 수 없고, 재현이 아니며, 재현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에요, 오롯이 창조, 여야 하죠, 창조는 완벽한 것이 아니라 덜 만들어진 상태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점점 더 만들어져 가는, 의식이 생겨나는 상태에요,
그래서 현재에는, 지금의 이 전시에서는 불평등하고 완성이 보장되지 않은 형태,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를 정체불명을 답보한 상태로 조각적 시학 (SCULPTURE POETICS)의 실험영역을 구성하려 들어요,
에필로그
지구극장에 대한
“나는 그렇게 발가벗고 있다.”
2025년 여름,
Sih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