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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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
2025
고백_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
방킬라이 나무, 장미, 컴바인벨트_40 × 97 × 67.5 cm (*reinstallation: version 4)_2025
그 외.
*고백_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_잉크젯 프린트_40.8 × 31.8 cm, ed.1/3_2025 (*resizing: version 3)
*고백_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_잉크젯 프린트_40.8 × 31.8 cm, ed.1/3_2025 (*resizing: version 3)
*고백_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_잉크젯 프린트_40.8 × 31.8 cm, ed.1/3_2025 (*resizing: version 3)


나는 2016년 무대 위의 쌍둥이-프롤로그 전에서 선보였던“고백”의 이야기를 다시금 재구성해서 펼쳐놓는다. 고백은 자아가 분열된 기혼여성 줄리아와 아들 댄, 남편과 아서 이렇게 3인 가족이 각각의 시점으로 줄리아에 관해 이야기한 짧은 글과 장미생화로 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재구성, 재설치하면서 나는 고백이라는 제목을“ 고백_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 라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에서 가져온 긴 문장으로 바꿨다.
장미는 내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장미-여성-성적 관계성을 상징하는 식물로서의 장미가 행한 폭력성에 초점을 두었다. 장미의 상징체인 줄리아는 그 속에서 떠나기 위해 자해를 가하고, 두 남성, 남편과 아들은 끝까지 그런 줄리아를 마치 상징화되거나 신성화된 무엇을 바라보듯 떨어져서 주변을 맴돌며 관조할 따름이다. 그런 이미지의 상징성에 갇힌 장미는 나무 바닥에 자신의 몸을 조여 맨 갇힌 구속된 존재로서, 희미해져가는 향을 발하며 존재한다. 장미는 그렇게 자신에게 부여된 상징과 관계를 부정한다. 그러므로 로제티의 싯구처럼, 남성의 시선이나 관념에서 벗어난 존재 가치로서의 위대함을 내보인다. 설치 사진 등으로 구성된 각각의 작품, 은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나의 작품이기도 한 독특한 구조로 선보인다.
 -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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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  ), 오 순수한 모순이여!
2025. 4.4~2025. 4.24
페이지룸8 @pageroo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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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_전시에서_나는_2016년_무대_위의_쌍둥이-1.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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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레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에서

 나의 집, 나의 정원에는 30주가 넘는 장미가 심어져 있습니다.
웨스터 랜드와 코랄던이라는 향기가 짙은 주황빛과 분홍빛의 장미에 처음 매료되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엘리언 질레, 보니, 카푸치노, 라 로즈데 까르트방, 등등 다양한 종의 장미를, 매년, 가지를 치고, 영양제를 주고, 벌레와 이상기후로부터 보호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각각의 장미는 성격도, 향도, 생김새도 달라서 똑같은 방식이 아니라 하나하나 그 특성에 맞게 관리해줘야 우리가 꽃집에서 보듯 그 풍성한 꽃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정말 정원사의 품을 많이 빼앗는 식물이기도, 그리고 그 아름다움 탓에 많은 벌레들의 먹잇감이기도 합니다. 그 중 검은 딱정벌레는 정말, 할 말을 잃게 합니다. 꽃이 피기도 전 꽃봉우리부터 야금야금 뜯어먹어서 종래에는 장미 그 자체로 피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무서운 벌레입니다.
최근에는 장미 가드너들에게 이제는 장미를 하나씩 떠나보내고 있다, 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기후 탓입니다, 추위와 더위가 길어지고 봄, 가을이 사라지면서 장미는 쉽게 병에 걸리고 꽃피우는 시기가 너무 짧아지고 있는 탓입니다. 우리가 그냥 씨를 뿌려 한 해가 지나기만 하면 매년 꽃을 보여주는 메리 골드나, 사스타 데이지, 구절초 같은 야생화라 불리는꽃과는 너무 달라서, 따듯한 남쪽지방이 아니면 앞으로는 마당에 심어져 있는 장미를 못보게 될 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2024년의 겨울을 보낸 경기 북부의 제 집 마당 장미들도 4월 중순이 지나가도록 꽃봉오리를 맺었어야 할 시기에 꽃은커녕 잎사귀도 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미입니다. 가시를 세워서는, 다가서지 말라고 하면서도, 가장 많은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마치 소외된 자들의 상처받은 마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장미 하나하나에는 이름이 지어지고, 의미가 부여됩니다. 가드너 들이 혼신을 다해 새로운 형태, 색을 지닌 장미를 육종하고 그 장미가 가진 상징과 역사를 기립니다. 내가 처음 장미를 깊게 들여다보아야겠다 생각했던 것은 “소녀” 라는 하얗고 단아한 한국, 국산 품종의 장미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미는 위안부에게 헌정된 장미였습니다. 이름처럼 그 장미는 하얗고 순수하고 연약했지만 따스합니다.
저는 꽃을 좋아합니다.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저에게 꽃이 가진 의미는 현실과 환상 그 어디쯤의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시절, 엄마가 가끔 부업으로 하시던 조화 만들기에서부터 저의 꽃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짜 잎을 엮어 만든 조화 꽃의 마무리는 수술 안에 사알짝 향기를 묻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일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저 엄마의 알 수 없는, 퍼포먼스였죠. 조화 꽃은 향기를 머금고 완벽하게 진짜를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 커서 마주한 저의 2017년 제 작품 속 장미는 단두대 밑에 자리잡았습니다. 그 장미꽃 더미는 여름비로 유달리 습해진 지하 전시 장소에서 약간의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말라갔습니다. 그 비릿한 향기는 장미의 향기였을까요? 아니면 죽어가는 다른 존재의 필사의 향이었을까요? 향기는 그 꽃이 자란 토양의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칩니다. 일반적으로 흐리고 추운 날씨, 산성의 토양에서는 향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죠, 장미를 비롯 많은 식물이 나고 자라는 지역의 풍부함과 빈곤함 등을 그들이 맺고 피우게 되는 꽃과 향기로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단두대 밑의 장미는 분명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처절한 몸부림이자 죽기전에 내뿜는 숨과 같은 향이었을 겁니다. 위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햇살은 없고 강하게 내려 쬐는 헤드라이트 조명, 그리고 습한 기운이 장미꽃 더미를 고문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만약 가장 아름답고, 가장 풍성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가장 좋은 향기를 맡고자 한다면 따스한 햇살이 많은 지역의 이른 아침이 가장 적절합니다.

 장미는 그 화려함과 향 덕분에 퇴패와 쾌락이 되기도, 죽음이 되기도, 도는 아주 반대로 성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무한한 우주의 신비로 불리기도, 성적 상징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원의 장미가 만개하면 접사용 카메라를 들고 나가 수술이 모이고 잎사귀가 겹치는 곳을 클로즈업해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들쳐보고 싶은 욕망, 만지고 싶은 속살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실루엣,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처럼, 성적인 대상처럼 느껴지는 요소가, 다분히 생겨나기도 하죠, 조지아 오키프가 꽃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평생 싸우며 추상적인 요소를 더 강조해 작품을 보아주길 바랬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성적 연상을 포함해 아마추어, 취미 화가들의 그림, 이발소 꽃그림, 장미 화병, 정물화, 에서 드러나는 장미는, 낡고 오래된 “클리쎄” 일가요? 아니면 변치 않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많은 미의 상징체일까요?

 어느 책에서 나오는 단락 중 한 노동자가 저자에게 그리 말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에게 건넨 장미 꽃다발은 다정함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고. 처음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장미가 유난히 “인간의 식물” 로 불리는 그 역사를 보며, 어느 시점에서는 퇴폐적이고 어느 역사에서는 신성시되었으며, 연금술의 도구이기도, 언젠가는 아주 의로운 약재였고, 테이블 위 화병에 아름답게 꽂혀 있는 장미를 보고 장미산업을 떠올리며, 지금의 환경에 맞지 않는 재배방식과 그것을 거슬러보겠다는 가드너 들의 품종 개량, 원종과 변종, 육종, 그리고 콜롬비아의 꽃 산업, 장미가 전세계로 배송되는 과정, 모든 것들 아래에서 발현되는 정반대의 욕망들,을 바라보며 나는 장미가 슬픈 꽃 눈물이라는 데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꽃이 이처럼 정치적이고 복잡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잔인한 역사를 전부 지니고 있을까요?

 한국에는 한국의 장미가 있습니다. 바로 찔레꽃이에요, 찔레꽃은 늦은 봄부터 시작해 작고 하얀 꽃을 수도 없이 피어냅니다. 서양 장미들과 달리 찔레 꽃은 내버려두어도, 흔히 걸리는 검은 반점 병에도 걸리지 않고, 오랜 기간 피어 있는 데다가, 정말 그 향은 달콤합니다. 찔레는 고려 시대 공녀로 끌려간 찔레가 힘들게 돌아온 고향에서 가족을 찾을 수 없어 상심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핀 꽃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에 반대되는 슬픈 전설입니다. 그렇지만 찔레는 저희 집에 있는 그 어떤 장미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향을 내뿜어 종종 지나가는 사람을 매혹시키고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4월 말이 가까워가지만 장미 정원은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가 왔습니다. 아마도 이 비를 머금고 햇살이 밝아지는 내일엔 한층 자라겠지만, 사실 많이 늦었습니다. 이러고 갑자기 더워진다면, 장미들은 딱정벌레, 깍지벌레, 쐐기벌레의 집중공격과 더불어 흰가룻병, 검은 무늬 병 등 온갖 병에 시달려 볼품없이 잎사귀와 봉우리를 다 떨구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 각오와 달리 친환경 농약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결국 센 농약을 손에 들게 되죠, 그러면 집 연못에 사는 도롱뇽이 걱정되고, 벌레들을 잡아먹을 새가 걱정되고, 그 잎사귀 사이를 휘집고 다닐 고양이들, 청개구리, 뱀, 하고 걱정이 무작정 늘어납니다. 어쩌면 장미는 심겨지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아니면 다른 존재들의 죽음을 불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미는 그렇게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폭력을 동시에 지니고, 세속적인 미와 영적인 미를 동시에 지니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지금 북촌의 한 전시장에는 나의 장미 더미가 있습니다. 무겁기로 유명한 방킬라이 나무로 제작한 낮은 수레에 꽁꽁 묶여 마치 바다 속에 가라앉듯, 자신의 생명을 가라앉히고 있죠, 처음엔 아주 아름다운 색과 자태, 향기를 뽐냈지만 3주가 지나는 전시 말미에는 서서히 말라 수분을 잃고 한껏 쪼그라져 묶어 두었던 벨트가 허기진 배 마냥 느슨해져버렸습니다.  처음에 장미는 제 이야기 속 줄리아라는 중년여성 인물의 상징체였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성적 지향성에 반기를 들고 마치 정신분열 증세 같은 태도로 자유를 갈망하다가 사그라지는, 장미는 그런 인물의 상징체이자, 저항의 메타포였습니다. 자신을 말라죽어가도록 내버려두어야만 자유가 허락되는 구속, 그리고 기꺼이 말라죽어가도록 자신을 내던지는 갈망이 가득한, 그런.
저는 오늘도 장미의 잎을 따고 비료를 주고 뿌리에 방해받지 않도록 주변의 잡초를 뽑아냈습니다.
어떤 장미는 기둥을 세워주어야만 잘 자라고, 어떤 장미들은 일년에 단 한 번만 만개하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또 어떤 장미는 가시가 너무 단단해 만지기 전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장미용 장갑을 끼어도 그런 장미의 가시를 막을 도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서 깨닫죠, 나에게, 내 작품에서의 완벽한 장미란, 활짝 핀 장미가 아니라 “죽어가는 장미” 라고 말이죠,  

 나의 장미 정원이 아직 진행형이듯, 아직도 담고픈 것이 많으니 아마 장미 작품은 여기서 끝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정원은 제대로 된 모습,이 갖추어지려면 수년이 걸리죠, 모든 게 자기 자리에 있고 토지와 환경에 적합한 식물들이 적응하거나 사라지고 다시 심어지고, 이 모든 과정을 지나야만 정원이 완성됩니다. 장미는 더하죠, 그냥 있어도 손이 많이 가는데 혹여 덩굴이 제멋대로 자라면 끊임없이 방향을 잡아 묶여 유도해주지 않으면 서로 뒤엉켜버려 손을 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나는 그것을 ‘장미의 혼돈”이라고 부릅니다. 혼돈이 오면 원인과 원인에 휘말린 곁가지까지 잘라내어주어야만 합니다. 그게 장미정원에서 혼돈을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그 혼돈이 해결되고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작품에서 대답을 찾아가는 것처럼요,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김시하, 고백-세상을 불로 뒤덮는 것은 장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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